동네찌라시

大邱에 一年以上 살다보니 아파트에 ‘엠플러스韓國’인가 뭔가 하는 雜誌 비슷한 걸 無料配布하고 있었다. 韓國日報 大邱慶北取材本部라는 巨創한 門牌를 내걸고 韓國日報에서 장사 요량으로 이런 동네新聞을 發刊하는 게 틀림이 없었다. 이 新聞인지 雜誌인지 모를 正體不明의 印刷物이 알고 보니 벌써 7年동안이나 發行해 오고 있었다. 7年 세월이면 그간 적지않게 재미를 봐 왔음을 추측케 한다. 나는 동네 찌라시 新聞이나 雜誌 나부랭이들의 俗性을 잘 알고 있었다. 筆者가 朝鮮日報 中央日報社에서 二十年 넘게 몸 담아 오면서 新聞이나 新聞社의 俗姓이나 특히 광고수입을 노린 온갖 동네, 지역新聞社들의 장삿속을 모를 리 없다. 이런 類의 地域新聞, 雜誌들은 그들이 發行處로 내건 新聞社와는 별 關聯이 없는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特定 新聞社와 장삿꾼들의 利害關係가 맞물려 생긴 駭怪한 印刷物에 不過하다는 것이다. 韓國日報 측에서야 이름 붙여준 값을 받고, 가만 있어도 自身들의 新聞社 弘報까지 해주니 損害 볼 것 없는 장사가 되겠고, 韓國日報 門牌를 내건 장사치는 그 新聞 題號 덕을 좀 볼까 꼼수를 부리는 것에 不過하다. 深刻한 問題는 大邱市民들이 이를 잘 모르고 있다는데 있다. 특히 地方, 地域民들은 印刷物에 自身의 이름 석자나 자신의 얼굴寫眞이 실리는 것에 매우 感動한다. 그것도 소위 이름있는(?) 言論社에서 發行되는 媒體에 自身이 알려진다는 것은 大壇한 榮光으로 여긴다. 어찌보면 一介 平凡한 市民의 立場에서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매스컴을 향한 參與 慾求에 목 말라있고 邊方에 사는 설움을 다소간 떨쳐버릴 수 있다는 報償心理를 가지고 있다. 또 自身이 사는 地域에서 이름과 經歷, 얼굴을 滿天下(?)에 알릴 수 있다는 것에서 굉장한 喜悅을 느낀다. 자신의 業所 廣告弘報 效果를 노리는 것도 포함해서다. 發行하는 쪽은 이런 心理를 특히 노린다. 이 雜誌인지 新聞인지 모를 희한한 종이뭉치를 좀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개 사람의 얼굴寫眞을 大幅적으로 싣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全體 쪽수의 70~80% 以上을 사람이나 職業, 業所 등의 紹介로 채운다. 이것이 바로 앞서 말한 장사치가 재주를 피운 노림수의 證據다. 나머지 記事는 거의 自社 弘報나 약간의 生活情報나 常識 등으로 메꾼다. 겉으로는 마치 住民들을 위하는 것처럼 各種 美談도 紹介하고 細細한 生活相까지 전하는 듯 보인다. 한편으로 보면 마치 누이좋고 妹夫도 좋다는 式으로 서로 相扶相助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實相은 누이좋고 또 누이좋은 식으로, 한쪽만 利得을 챙기는 것에 불과한 高度의 商術이 숨어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또 하나 놀라운 점은 이런 쓰레기와 같은 印刷物이 내가 사는 아파트뿐 아니라 대개 大邱市內 거의 全 地域 아파트 團地에까지 퍼져있다는 것이다. 이 장사꾼들은 자기네들 나름대로 머리를 굴린 것이 各 地域 아파트 大團地를 자신의 印刷物 아이템으로 정해 어떤 地域은 A아파트, 또 어떤 지역은 B 아파트 이런 식으로 自身들의 엠플러스韓國이라는 題號下에 속의 內容은 特定 아파트團地 住民들을 紹介하거나 業所들을 弘報하는 식으로 약삭빠른 商魂을 부린다는 것이다. 그러니 大邱市內 만해도 상당히 많은 아파트 大團地들이 있는데 이를 이런 식으로 넓혀나가면 상당한 메리트가 있는 것으로 그들은 이미 分析한 것 같다. 지역 아파트團地 住民들을 紹介하는 척 하면서 이를 부추기거나 眩惑하고, 隣近 業所의 廣告나 市內 病院, 웨딩業體, 美容室 등을 廣告하면서 利得을 챙기려는 手作임이 確然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住民들, 大邱市民들은 이런 점을 잘 알고 이들의 劃策에 眩惑되어 뜬금없는 韓國日報 看板을 내건 業者들에게 그들의 배를 불리도록 許諾해선 안 될 것이다. 또 궁금한 것 한 가지는 이 新聞에 무슨 編輯委員인가 하는 者들의 面面을 보면 거의 大邱에서 開業한 醫師나 韓醫師가 主를 이루고 있는데 醫師들을 貶毁하려는 뜻은 아니지만, 바쁘기 限量없는 醫師先生들이 정체모를 駭怪한 찌라시 新聞의 編輯委員을 하는 理由가 어디에 있는 가하는 점이다. 아마 모르긴 해도 編輯委員이라고 하여 한 달에 한 두번 글이나 써주면 廣告는 그냥 내주겠다, 무슨 이런 去來가 숨어 있지 않는지 모르겠다. 찌라시 신문이 通常 노리는 노림수의 하나가 바로 地域 오피니언 리더들의 글을 실어서 마치 무게감 있는 新聞인 것처럼 糊塗하거나 僞裝하는데, 大邱의 오피니언이라고 해봐야 대개 敎授나 高位 公務員, 醫師 등을 쳐주는 정도이다. 나는 個人的으로, 韓國에선 오피니언 리더라 하여 대개 詐欺君이나 謀利輩 들이 橫行하기 때문에 이 땅에 眞正한 오피니언 리더는 없다고 말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인데, 大邱地域의 오피니언 리더를 굳이 꼽는다면 그나마 金錢과 利害關係가 다소 덜한 敎授나 學者들 정도이다. 그런데 이 찌라시에는 그런 층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醫師나 美容室 院長, 무슨 中小業體 社長 들이 太半이다. 그것은 이 찌라시가 자신이 運營하는 業所 弘報가 되기 때문이 아닐까. 만약 돈 한 푼 안들이고 廣告를 낼 수 있다면, 編輯委員 會長인지 뭔지 하는 이런 정도의 無 報酬 감투(?)자리는 堪耐할 수 있다는 意圖가 숨어있기 때문 아닐까. 最小限의 經費로 最大의 廣告效果를 보장받는 것이 모든 自營하는 個別事業者들의 꿈이요 希望事項이다. 그런 利害關係가 相互간 맞아떨어졌기 때문 아닐까. 大邱經濟가 어려워진 까닭이 大邱地域에서 어떤 特定 商品을 自體 製造하거나 生産해내는 會社나 工場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서비스業種이 발달해봐야 都市가 發展을 이루기 어렵다. 內部가 아니라 外部에서 돈을 벌어 들여와야 한다. 예부터 大邱가 특히 消費文化가 발달했다고 하는데 消費가 美德인 時節에 하던 얘기고 그것도 景氣가 좋을 때 하던 얘기다. 서비스業 市場이 늘어나봤자 당장에 業主들은 糊口之策으로 하는 일이겠지만, 都市經濟學上 外華內貧式의 크게 좋을 것 없는 그 나물에 그 밥이요,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 式 제로섬 게임과 같은 것이다. 같이 사는 한동네 사람 호주머니 돈 빼앗아와 자기 주머니를 채워봐야 호주머니 돈이 결국 쌈지돈 밖에는 안된다. 外貨獲得의 重要性을 새삼 일깨우는 대목이다. 他地에서 돈을 벌어와야 그 都市가 發展한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輸出이다. 그러나 大邱地域에서 輸出을 할만한 아이템이 얼마나 있으며 輸出 실적을 내는 工場이 얼마나 되는가.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 가뜩이나 없는 지역살림에 外地 廣告業者와 結託(?)하여 消費를 助長하고 誘惑해서 住民 돈 벌어들이면 어느 國會議員 말처럼 그렇게 하면, 살림살이 좀 나아지시겠습니까 라고 하는 소리와 같다.

by 럭키 | 2009/12/15 15:17 | notes

烏合之卒

烏合之卒
光化門 廣場에서 열린 스노보드大會에 數十萬 서울市民들이 몰려가 구경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그 數十萬 名이 서울을 代表하는 사람들이 아니란 점을 안다. 아무런 生角 없이 그 근처를 걷다가 偶然찮게 그 光景을 보게 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작 전부터 輿論이 좋지않게 돌아가고, 열리기 전까지 그렇게 말이 많았던 行事였음에도 그곳까지 직접 찾아가서 歡呼하고 손뼉을 쳐가며 구경한 市民들의 생각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게다가 서울시는 스스로 行事를 成功리에 마쳤고 全 世界에 首都 서울을 알린 기회가 되었다고 自畵自讚하고 있다. 스노보드大會는 열릴 수 있다. 그러나 서울 한복판 光化門에서 이런 쇼를 演出한 것은 분명 展示行政의 極限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중에 대한 人氣迎合을 꾀하는 誇示行政家의 잔꾀에 利用당하고 놀아나는 烏合之卒 같은 國民은 제발 되지 말아야 한다. 展示行政을 企劃하는 者들이 노리는 것이 바로 이런 소위 ‘제 발로 걸어 들어오는‘ 사람들의 關心과 參與다.(2009.12.13)

by 럭키 | 2009/12/14 06:30 | notes

過大評價의 함정

우리는 소위 過大評價, 過小評價 라는 말을 가끔 듣거나 쓴다. 사람이나 어떤 특정 일과 사안에 대해 판단하고 평가함에 있어서 주로 그러한 말을 적용한다. 고평가, 즉 실제보다 부풀려지고 왜곡되게 평가 받는 사람들이 주변에 의외로 많이 있다. 당사자로서는 일생일대의 행운이고 횡재수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바라보는 제3자에겐 상당히 씁쓰레한 일이다. 그와 정반대로 실제 괜찮은 사람이 되려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람들 또한 적지않다. 그것을 구태여 운이 따르지 않아서, 재수가 없어서 라는 식으로 해석해버리기에는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다. 진실한 실체를 보지 못하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사람들의 굴절되고 왜곡된 된 시각이나 편견, 혼탁해진 판단력 때문에 기인된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왜 실제보다 과잉평가 받는 일이 생기는 것일까? 진실한 실체를 왜 그토록 보지 못하는 것일까. 사람에게는 대개 선입관, 선입견이라는 게 있다. 첫 인상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 선입견 때문이라는게 정설이다. 처음 본 인상으로 특정인의 전체를 판단하려는 버릇이 사람들에게 있다. 혹은 어떤 특정인이 우연히 행운이 따라 해놓은 일을 갖고 그 사람의 능력이 좋다고 섣불리 평가를 내리는 일 또한 많다.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서투르고 섣부른 판단과 평가가 한 개인의 인생 전반을 결정해버리는 위험성까지 생길수 있다. 학교나 직장 등등 사회전반에 걸쳐 심심찮게 이 '우연한' 기회로 말미암아 실제보다 고평가 받는 인간들이 곳곳에 숨어있음을 발견해낼수있다. 그 자신조차 이렇게까지 평가 받게 될 줄 몰랐기에 스스로도 놀라고 들킬까봐 가슴저미며 그로인해 더더욱 자신의 실체를 숨기고 드러내기를 꺼려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류의 인간들의 몰락은 한순간에 어이없게 끝을 맺을수 밖에 없다. 실체를 드러내는 순간, 그의 생은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부동산시장의 표현으로 거품이니 버블세븐이니하는 말도 과대평가라는 표현과 일맥상통한다. 실제보다 과장되게 부풀려지는 것이 과대평가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인간시장에서의 과대평가가 어떤 지경에 까지 와 있나 보자. 우리가 흔히 정치권에서 볼 수 있는 인기정치인 혹은 소위 관심1호 정치인이라 불리워지는 사람들을 들 수 있다. 하는 일이나 업적이나 행동양태를 봤을때 실제보다 과대포장된 정치인들이다. 소위 민주화운동의 전력이 있는 정치인들이다. 그들은 과거 군부독재시절 민주화운동을 했다고 하면 대개 좋게 평가해버리는 한국민들의 판단력에 얹혀 한몫 보는 류의 사람들이다. 그들의 능력이라는 것이 단지 머리띠를 메고 단식이나 가두시위처럼 몸으로 때우는 식의 투쟁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아는데는 몇년이 걸리지 않았다. 순수하고 부정부패를 모를 줄 알았던 그들도 권력을 잡고보니 덜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 과거 모 TV드라마로 인해 유행한 '모두가 도둑놈!(민나 도로보데스)'이라는 말이 현재까지도 통용되고 있다. 경제를 살리는데 적절한 혹은 우수한 능력을 가졌으리라 국민들이 짐작해서 뽑아준 대기업 총수 출신 국가원수가 국가경제를 끌어올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거나, 금융계 인사가 기울어진 나라경제를 살리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명강의로 이름난 교수, 학자출신들이 등용되어 잘했다는 말을 들은 기억도 없다. 대체로 인맥이나 학연, 지연 등으로 천거된 사람들이 과대평가 받는 일이 적지않다. 그를 천거한 사람이 대략 힘을 좀 쓰는 사람이기에 그도 힘좀 쓰는 사람, 혹은 힘을 쓸 줄 아는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오인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통 천거된 사람들은 평소 친분이나, 인맥 등 정도에 국한될 뿐, 능력은 검증되지 않은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 일수록 자질이나 능력보다 뇌물이나 아첨에 근거한 것이다. 연예계 경우, 자질이나 능력은 별로인것 같은데 갑자기 갑자기 TV에 나타나 각종 연예프로에 기용되어 자주 모습을 드러내거나 급작스레 뜨는 경우다. 특정인을 예로 들기는 뭣하나, 꿀벅지라 하여 연일 TV나 인터넷에 오르내리던 Y양이 그런 예다. 도대체 무슨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하루아침에 스타가 됐다. 이해못할 일이다. Y양의 경우는 빙산의 일각이다. 숱한 함랼미달 연예인들이 어느날 갑자기 기용되어 인터넷 바람을 타고 스타가 되곤 한다. 여론조작이 언론과 정치권과의 밀약이나 야합에서 생기는 일만이 아니다. 예능프로에 관계되는 프로듀서, 제작간부, 스포츠지 관련 연예담당기자, 간부진 등과 거대 연예프로덕션과의 검은 커넥션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TV프로그램만 보더라도 그렇게 말많고 탈도 많은 소위 외국유학생들 모아놓고 시시콜콜한 얘기를 여과없이 내보내는 프로를 끝까지 고수하는 것도 그렇다. '니들 따위가 암만 떠들어봤자 나는 꼼짝 않는다'는 식의 제작진의 오만과 독선의 냄새가 묻어나는 대목이다. 한번 시작하한 일은 누가 뭐라고 하든, 여론의 질타가 아무리 거세어도 묵묵히 내 길을 간다는 식으로 일관한다. 이것은 지혜가 담긴 고집, 도덕적 견해가 집약된 굳건한 의지력이 아니라. 앞뒤가 꽉 막힌 똥고집 외엔 어떤 식으로든 해석할 길이 없는 행위다. 막장 드라마라 하여 아무리 시청자, 네티즌들이 연일 질타를 하여도 글쓰는 작가나 제작자 자기들끼리 눈, 귀 다 막고 초지일관 버티기로 작정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이를 두고는 무슨 과대평가라 하기 보다 시쳇말로 무대뽀식 밀어부치기가 맞다. 그 뿐인가. 지근거리에서 볼 수 있는 과잉평가형 인간은 도처에 널려있다.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같은 직장에서도 별로 능력도 없으면서 인정을 받고 승승장구하는 부류가 그런 케이스다. 악화가 양화를 배척하는 일이 공공연히 벌어지는 곳이 직장이라는 곳이기도 하다. 회사 사주의 눈으로 봐선 키워줄만한 놈일지는 몰라도, 주변 사람들 눈에 비친 것으로는 분명히 아주 질이 나쁜 사람이다. 그런 악한 인간이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회사 높으신 양반들에게는 지극한 충성심을 내보이면서도 자신 외에 동료나 선후배들에게는 지독한 이기심과 비협조로 일관하는 특징을 보인다. 범죄자로서의 싸이코패스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살인 같은 강력범죄만 저지르지 않을 뿐이지, 도처에 일신을 챙기기 위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떠한 짓도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그러나 겉으로는 멀쩡해뵈는 숨어있는 싸이코패스를 찾아보기 어렵지 않다. 비근한 예로 내가 다녔던 모 회사에서도 전형적인 아부형 인간이 있었다. 회사측은 자신의 아래 부하직원들을 억압하고 손아귀에 쥐는 유형의 인간을 일단은 선호하는 것이 통례다. 말하자면 엄중한 감독관을 하나 둔 셈으로 그들은 간주한다. 그것을 리더십이라고 오판한다. 거칠게 말하면 막노동판에 완장 찬 악질적인 십장과 같은 부류다. 그런 그가 승진을 거듭하더니 무슨무슨 자회사 대표가 됐다고 한다. 소식을 접한 나는 한동안 정신적 진공상태에 빠졌는데, 이미 나는 그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으므로 관여할 이유도, 참견할 까닭도 없었기에 먼산 불구경하듯 하기는 했지만 질 나쁜 사람이 잘 되는 것처럼 미운 일은 없었던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려는지 참으로 한심할 노릇이었다. 그래도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무심히 돌아간다. 그렇지만, 진실과 순수함, 참된 인간성에 대해 갈파하는 소위 진리의 성서는 도대체 어디서 찾아봐야 되는 것인지 갈피를 잡을수 없을 뿐 아니라, 훈육하는 부모, 스승으로서 자라는 후세들에게 어떤 식으로 가르치고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하는지 종잡을수 없는 일이었다. 한국 기업의 내부사정이 이토록 말도 안되게 무식하다는 것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앞서 말한 과대평가와 사안자체가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에 대한 왜곡된 평가와 검증력, 인사시스템 오작동 등이 겹쳐진, 말 그대로 심각한 인사 사고에 해당되는 일이고 이것 또한 인간에 대한 잘못된 과대평가, 과잉평가에 속하는 일이기도 하다.

by 럭키 | 2009/12/13 13:26 | notes

畵伯이라는 者들

나는 일부 畵伯이라는 者들이 그들이 속한 新聞社 입맛에 맞게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해 할 말을 잃는다. 그들은 그저 ‘그림쟁이’가 아니다. 그들이 그리는 그림은 記者가 쓴 記事와 똑같은 價値로서, 記事를 그림으로 表現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는 자의 心中은 자신이 몸담은 新聞社와 思想이나 觀念이 同一하여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림을 그릴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대부분의 畵伯이라는 者들의 行態는 新聞社의 主張이나 思想을 그대로 옮기는 몇푼의 月給에 현혹된 그림쟁이 들이라는데 問題가 있다. 그들은 붓을 꺾어야 한다. 소위 漫評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붙여놓고 매일처럼 紙面에 그려대는 볼썽사나운 行爲를 당장 中斷해야 한다. 過去 몇몇 畵伯들은 自身이 그린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다고 다시 그릴 것을 要求한 社側에 대해 拒否하고 退社한 勇氣있는 畵伯들에 대해 讚辭를 보낸다. 그들이 眞正한 畵伯이다. 지금 朝鮮日報에 그림을 그리는 신경무라는 者의 입장은 잘 알지 못하지만, 그가 每日처럼 그려내는 그림들의 內容은 차마 맨낯으로는 보기 어려울 정도로 稚拙하고 惡質的인 權力의 弘報物 다름 아니다.

by 럭키 | 2009/12/12 15:34 | chosun

모든 市民은 記者다

‘모든 市民은 記者다’ 라는 캐치프레이즈를 ohmynews에서 내걸었다. 사실 그 말이 맞다. 記者가 무슨 특수한 身分이 아니다. 누구나 記者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아무나 될 수 있다는 말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일을 修行하기 위한 所定의 能力이 필요하기는 하다. 그게 學閥이나 글재주 따위가 아니라, 글을 읽기 쉽게 쓰거나 남이 들어서 이해하기 좋게 말하는 정도의 아주 基本的 能力을 말하는 것이다. 무슨 무슨 이름있는 新聞社에서는 기자를 뽑는데 名門大 出身들이 數百 數 千對 一을 기록하는 것은 職場잡기 어려운 時代的 상황 말고도, 그 職業에 대해 特殊한 身分을 보장해주는 현재의 韓國的인 體制에 있다. 말하자면 待接을 해주는 職業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記者라는 게 도대체 뭔가. 그들은 단지 世上 돌아가는가는 것을 읽어내고 잘못된 것은 밝히고 잘된 것은 國民들에게 알리는 役割 그 以上 그 以下도 아닌 사람들이다. 오히려 國民들 보다 더 낮은 자세로 임해야 할 사람들이다. 무슨 特別한 待接을 바라서도 안 되지만 待接을 해주어서도 안 되는 아주 平凡한 그저 國民 중 한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 돌아가는 것을 보면 그게 아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상당한, 매우 상당한 待接을 받고 있다. 또 스스로 그렇게 待接받고 대우해주기를 바란다. 조금이라도 그들에게 待接이 소홀하면 당장 言論彈壓으로 몰아가는 게 그들이다. 集團 利己主義와 패거리문화에 陷沒되어 있다. 소위 記者協會라는 것이 뭔가 그들의 利益集團의 의미 외엔 아무것도 없는 그저 그런 親睦團體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네들끼리 똘똘 뭉쳐 자신들의 利害關係에 흠집이 가거나 侵害받는다 싶으면 자기들끼리 평소엔 별로 친하게 자내지도 않으면서도 자기네들끼리 똘똘 뭉쳐 다투어 聲明을 발표하거나 각 新聞紙面마다 도배질 하다시피 한다. 머리띠를 메고 街頭鬪爭을 불사하는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政治人들이 그들의 버릇을 그렇게 들여온 측면이 많다. 民主國家 體制의 시대적 요청에 의해서 생겨나고, 國民을 위해 탄생한 職業群이 오히려 국민들 위에 君臨하고 權力者들의 추파를 받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제 노골적으로 權力과 身分上昇의 길목으로 記者라는 職業을 선택하고 있다. 나는 良心的이고 진정한 記者를 폄회하려는 意圖는 없다. 다만 상당수의 그런 자들이 記者로서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자신들의 一身 챙기는데 급급하면서 자신들이 일하는 新聞社 社主들의 奴隸가 되어가는 모습이 안타까워 하는 얘기다.(2009.12. 12)

by 럭키 | 2009/12/12 13:34 | joon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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