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매일신문 인근의 식당들

2009.11.2(월)의 단상

1985년때이던가, 한 5년 가까이 계산동 매일신문사에서 일하던 시절. 점심으로 자주 애용하던 신문사 인근의 맛있던 단골집들이 생각났다. 그 중 기억에 남을 만한 집들은 대략 너 댓집 쯤 되는 것 같다. 나는 평소 탕이나, 장자가 끝에 붙는 이름의 음식을 즐겼는데, 예컨데 추어탕, 아구탕, 곰탕, 갈비탕, 매운탕, 육개장 같은 것들이다. 반면 나는 평소 기름지고 느끼한 중국음식을 별로 선호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매일신문사 시절 동료와 어울려다녔던 인근 중국집은 내게 진정한 자장면과 잡채밥의 참맛을 알게 해준 은인이었다 해도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생각지도 않은 객지생활을 20여년 하면서 서울에도 나와 궁합이 맞는 꽤 괜찮은 집들이 여럿 있었지만 여전히 대구시절 즐겨찾던 맛집들의 향수는 지금도 잊을수 없다. 지금은 모두 사라졌거나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느 초여름날 오후 4시, 석간신문인 탓으로 훤한 대낮에 퇴근해봐야 갈 곳도 마땅찮았던 시절, 경리과 노처녀 서무에게 읍소하다시피 가불한 몇푼의 월급으로 염매시장 한귀퉁이 대폿집서 동료와 막걸리잔을 기울이던 그 시절이 그립기만 하다.


기억에 남는 곳들 중 맨 먼저 꼽으라면, 점심때 가장 자주 다녔던 음식점들 중 하나였는데 상호는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매일신문사 주차장과 바로 인접해있는 추어탕집(A)이었다. 이 식당은 20년도 훨씬 넘은 지금도 메뉴를  달리하여 여전히 영업 중이었는데, 주인이 옛날 그대로인지는 확실치 않다. 이 집은 늘 전날 과음으로 숙취가 있던 날이면 어김없이 점심시간이 지난 한 2시경 쯤 들리곤 했는데, 그때가 한가하고 혼자 식사하기 좋은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이 집의 추어탕은 내가 먹어본 추어탕집들 중 국물이 가장 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식당 주인 아저씨의 말을 빌면 일종의 비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비싼 미꾸라지를 많이 쓸 수도 없거니와 미꾸라지를 많이 넣어끓인다 해도 진한 국물이 그리 많이 나오지 않으니 미꾸라지를 갈아 넣은 물에다 소뼈를 푹 고운 물을 섞은 뒤 곱창과 우거지 등 야채를 넣어 푹 끓인 게 진한 국물의 비결이라고 했다.(공개하는 걸로 봐선 '비법'은 아니었던 듯?) 두번째로 중요한 것은, 바로 추어탕과 함께 나오는 반찬이다. 보통 추어탕 집에 가면 나오는 반찬이라고 해봐야 김치 아니면 간단한 밑반찬 한두가지다. 대개는 양념된 배추김치나, 백김치 같은 게 나오지만, 이 집은 특이하게도 싱싱한 생배추를 썰어서 한접시 내온다. 알싸한 풋고추도 몇 개 포함해서다. 속이 꽉 찬 샛노란 배추를 된장에 찍어 추어탕과 함께 먹는 맛이 이 집의 추어탕 맛을 배가 시키는 것이다.

다음엔 매일신문 맞은편 신명여고(SM) 정문 쪽 바로 왼편엔 오래 된 건물이 하나 서있었는데, 일년내내 담쟁이로 뒤덮인 건물은 단 한 번도 안으로 들어가 본 적이 없지만 기독교 관련 서적을 파는 서점이 아니었나 싶다. 인터넷 지도를 보니 '보문기독서적'으로 되어있다. 지금껏 그 건물이 남아 있을리 없는데 신기한 일이다. 어쨌든 그 고풍스러운 건물이 서있는 길 쪽으로 해서 왼편 안쪽으로 계속 걸어 들어가다 보면 대개 낡고 오래된 주택이나 명목을 알 수 없는 몇 개의 가게들이 을씨년스럽게 들어서 있는데, 지금의 동산맨션 바로 앞 외진 골목길 쯤이라고 보면 된다. 거기에 일주일이면 한 두번 들리던 선지국집(B)이 있었다. 딱히 선지해장국이라고 못 박기도 좀 그렇지만. 기억을 되살려보면, 된장과 선지, 그리고 시래기인지, 우거지인지를 넣은 국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여기까지는 보통 일반 식당들과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 집이 특이했던 건 함께 내오는 '된장에 박은 고추'다. 국과 함께 접시에 담아오는 된장과 함께 푹 숙성된 큼지막한 고추는 그것을 입에 넣고 한 웅큼 씹는 동시에 입속에서 터져 나오는 잘 숙성된 고추의 육질과 알맹이들이 어우러지는 기가 막힌 고소함과 기분 좋은 짭짤함이 온 입안 전체로 퍼져 나오는 느낌이란 가히 환상 그 자체였다. 나는 이 집의 '된장박은 고추' 맛으로 인해 고추 마니아가 될 뻔 하기도 했다. 그 뿐인가, 고추가 나올 때 된장도 함께 버무려져 나오는데 아마도 이 집 묵은 된장독에서 고추를 내올때 된장도 함께 따라 나온 것이 분명해보였다. 그런데 이 된장 맛이 또 한 '맛' 한다는 사실이다. 이 집 국의 간을 맞추는 것은 소금이나 간장이 아니라, 바로 된장이다. 주인아저씨 모습이 희미하게 기억이 나는데, 큰 덩치에 50~60대 연세의 후덕해 뵈는 주인아저씨는 좁은 식당의 테이블 사이를 지나다니면서 처음 와서 약간 머뭇거리는 손님에겐 예외없이 먹는 방법을 설명해주었다. 국이 나오면 맨 먼저 고추와 함께 나오는 된장을 숟가락으로 떠서 국물에 넣고 푼 다음, 간을 맞춰본 뒤 먹으라고 얘기한다. 그런데 그 맛이 지금 생각해보면 지금의 선지해장국처럼 붉은 기름이 뜨는 매콤하고 다소 느끼한 맛이 아니라, 흡사 시래기 된장국 같이 담백하고 시원한 맛 같았다. 거기에다 큼지막한 선지가 국에 들어있으니 선지국 맛이 나면서도 느끼하거나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지금의 따로국밥 맛이나 육개장 맛과는 전혀 다른 맛이란것은 확실하다. 게다가 농익은 된장이 국 속에 녹아든  맛이라 요즘 대구의 각종 탕 맛에 길들여진 혓바닥으론 이 집 음식맛에 대해 구체화하기란 쉽지 않다. 그간 삼십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갔음에도, 집사람에게 내가 당시 먹어본 이 집의 국 맛을 설명하며 재현해 볼 것을 권했지만, 실현되지는 못했다. 집사람도 내가 기억을 더듬어 얘기했던 나름대로의 레시피에서 뭔가 아리송함을 느낀 것 같다.

다음엔 약전골목으로 통하는 좁은 골목 안에 있던 매일식당(C)이다. 지금도 이 식당은 주인장이 그대로인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꿋꿋이 살아남아있다. 이 집의 비빔밥은 양적으로나 맛으로나, 가격 면에서 좋았던 집으로 생각이 난다. 그 다음으로는, 방금 말한 이 골목 끝까지 걸어가면 왼편으로 2층건물인가에 지하다방이 하나 나온다.(은밀한 밀담을 나눌때 요긴하게 이용됐던 다방이다) 그 다방 오른편으로 돌면 바로 나오는 식당이 있었는데, 역시 상호명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집의 가정식백반도 꽤 괜찮았다.

다음엔 중국음식점인데, 매일신문사 건물 현관 앞 계단을 내려와, 계산성당 정문 앞을 지나서 성당 문화관 1층 계산서원 바로 옆에 있던 '장춘반점'((D)상호가 확실치 않다)이 그 집이다. 이 반점 주인 아주머니(화교)는 나를 포함한 매일신문기자들이 대개 낮12시쯤에서 '빈 방 있어요?' 하고 물을때마다  한번도 무표정한 모습을 보지 못했고 늘 웃는 낯으로 대했다. 그 집의 음식이 대개 맛이 있었지만, 갓 볶아낸 뜨끈뜨끈한 자장면의 맛은 일품이었다. 점심시간에 주로 이 집 2호실이나 3호실 방에서 문을 닫아두고 식사 전후 잠시 고스톱을 하며 시간을 보내거나 오수에 잠기는 맛이 꽤 괜찮았다. 워낙 단골이다보니 주인아주머니도 크게 신경쓰지 않고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두곤 했다.
나는 이 집에서 가끔 아침을 거르거나 출출한 날엔 잡채밥을 시켜먹곤 했는데, 맛도 맛이지만 저녁때까지 든든해서 좋았다.

다음엔 덕산파출소쪽 덕산목욕탕이 있던 길으로 들어서서 조금난 걸어들어가면 다닥다닥 붙은 가게, 주택 옆으로 간판도 제대로 붙어있지않은 아주 조악해보이는 단층 집이 하나있는데 그 집이 바로 아구탕집(E)이었다. 좁고 허술해뵈지만, 커다란 양재기에 한껏 푸짐하게 넣고 끓인 콩나물과 양껏 먹을수있는 아구탕 국물 등 넉넉한 인심이 유별난 집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아구탕이란게 원래 그러하듯, 건데기라고 해봐야 별게 없지만 콩나물과 아귀에서 우러난 시원하고 매콤한 국물맛은 일품이었다. 땀을 뻘뻘 흘려가며 먹던 이 집 아구탕 국물맛은 이후 서울에 올가서도 결코 잊혀지지 않던 맛이었다.

by 럭키 | 2009/11/02 15:02 | daegu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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