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07일
大邱사람들
大邱사람들
大邱에 내려와 生活한지 1年 6個月 남짓. 서울에서 20年 넘게 살다와 다시 올라온 大邱는 서울에서 공공연히 膾炙되던 ‘고담大邱’라는 汚名이 설마하며 믿고 싶지 않았지만, 豫想보다 훨씬 더 問題가 많은 都市라는 걸 알게 되었다.
新聞을 펼쳐들고 읽어봐도 가슴 답답한 題目과 記事만 눈에 들어온다. 社說인지 칼럼을 읽어보면 그저 豫算을 적게 配定 받았느니, 新空港을 密陽에 幼稚해야하는데 자칫 釜山에 빼앗길 것 같다느니, 尖端醫療複合團地가 忠北 五松보다 벌써부터 實績이 低潮하느니, 大邱市가 地域業體에 廣告를 안주고 忽待를 하고 있다며 징징대거나 온통 中央政府에 대한 怨望과 自責으로 一貫하고 있다.
볼 일을 보기위해 집을 나서 車를 몰고 裏面道路를 달려보면 道路周邊에 不法駐車된 車들로 엄청날 정도다. 4車線 道路에 양 가장자리의 2개 車線은 아예 있으나마나 한 것이다.
大邱는 自轉車를 利用하기에 가장 的當하지 않은 都市인 것만은 分明하다. 人道를 떡하니 가로막고 세워둔 不法駐車 車輛들, 人道를 占據한 隣近 가게나 店鋪 등에서 내놓은 物件이나 突出看板으로 自轉車를 몰고 갈 엄두가 나자않는다. 특히 機械附屬商이나 自動車整備 등 店鋪商街는 아예 人道를 자신들의 陳列臺나 作業場으로 使用하고 있는 것이다. 大邱에는 과연 行政力이나 警察力이 存在하는가 疑問이 들 정도다. 市民들의 意識, 公務員들의 꾸준한 行政指導나 警察들의 嚴正한 團束으로 首都 서울과 比較한다는 것이 좀 그렇다고는 하자만 大邱가 發展을 하려면 意識부터 바꿔야 한다.
大邱 距離를 걷노라면 茂盛한 所聞의 發源地인 大邱의 沈滯된 모습을 곳곳서 볼 수 있다. 有一하게 東城路 거리에서만 젊은이들이 내뿜는 活氣를 發見해 낼 수 있었지만, 예전의 活氣와는 다른 느낌을 받는다. 眞正한 젊음의 覇氣, 活力의 氣運을 본 게 아니라, 地方都市에 殘存한 몇 남지 않은 남은 靑年들의 흐릿한 眼光이었다.
온 都市 구석구석에 澎湃해있는 敗北主義의 두터운 帳幕. 그것이 經濟的 亂國 狀況에 直面해 있는 것에서 大部分 根源을 찾겠지만. 나는 무엇보다 의식, 精神의 改造, 革命的 改善이 아니면 걷어낼 수 없는 굴레가 될 것이 分明하다는 것을 感知했다.
法規를 함부로 無視하고, 國家行政力을 拒否하고, 地緣主義的인 舊態的 思考方式, 먹고사는 일에 汎濫하는 超法的 逸脫行爲 등 이러한 一連의 固着된 意識을 脫皮하지 않으면 안된다.
特別히 指摘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먼저 道路周邊에 함부로 駐車해놓는 行爲부터 고쳐야 한다. 잠시 볼일을 보기위한 駐車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러나 대개 不法駐車 車輛 運轉者는 누구나 볼 일을 보기 위한 것이라고 잡아떼는 것이 市民意識의 問題다.
人道는 말 그대로 步行者를 위한 道路다. 응당 步行者에게 人道를 돌려줘야한다. 나는 어느 老人분이 태연하게 황금로 人道를 오토바이를 탄 채 지나가는 것을 본 일이 있는데 계속 주시를 해보니 人道를 잠깐 동안 利用하는 게 아니라, 數 百 미터 以上을 계속 走行해 가고 있는 것을 보고 啞然失色했다. 물론 그 동네 人道가 대개 閑散한 탓도 있었겠지만, 이건 해도 너무 한 일이 아니가 싶었다. 各種 配達 오토바이들의 人道 走行은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나는 이 場面만 보고도 大邱의 現實을 切感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는 宅配 오토바이들의 막가派式 運轉行爲에 歎息했다. 대구는 宅配오토바이는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一般人들이 타고 다니는 오토바이들의 人道 走行이 問題다.
서울에 비해 相對的으로 老人人口 比率이 높은 大邱는 이래저래 沈滯될 수밖에 없는 運命에 처해있는 것이 事實이다. 老人들에게 覺醒하라고 促求한다고 해서 劃期的으로 달라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老人들 중에서 그래도 ‘깨어있는’ 老人層이 있다면 그래도 可望性이 없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한때는 知識層에 속해있던 老人들이 발 벗고 나서서 都市 改革化 作業에 一助한다면 成功 可能性이 없지는 않다.
# by | 2009/11/07 21:13 | daeg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