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8월 23일
뉴욕지하철 미술/파리몽마르트 화가
뉴욕지하철 미술
뭐? 낙서가 예술이라고?
멋진 건물 위 시원하게 펼쳐진 하늘에 흑인들이 재미있는 자세로 가볍게 둥둥 떠서 날아다닌다. 마치 보이지 않는 줄을 타고 곡예를 하는 것 같다. 이들이 떠다니는 공간은 흰 타일(tile) 모자이크로 널찍하게 표현돼 있고, 원색의 두꺼운 테두리가 하나하나 장면을 액자처럼 둘러쌌다.

(사진)
42번가 역에서 걸려있는 리히텐슈타인의 작품
미국의 흑인여류화가인 페이스 링골드(Faith Ringgold)의 작품이다. 그는 그림, 퀼트, 이야기 구성을 합친 미술작품을
만들어 인기를 끈다. 이 벽화는 실제 뉴욕 할렘(Harlem)에 있는 유명한 건물과 그 지역의 유명한 흑인들 모습을 소재로 해서
할렘의 역사를 엮어 보여준다. 하지만 이 모자이크 작품이 걸린 곳은 미술관이 아니다. 할렘의 중심인 맨해튼 125번가 동쪽에
있는 지하철역 승강장이다. 1990년대 초만 해도 범죄율이 높아 뉴욕경찰(NYPD)의 골칫거리였던 곳. 이제는 이 곳 지하철역에 미국의 주요 미술관에서 전시를 하는 이 현대작가의 작품이 전시돼있다.
올해로 100주년을 맞는 뉴욕의 지하철은 전체 길이가 722마일(1162㎞)이나 되는 지하의 미로다. 세계 100여개 민족이 모여 사는 도시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하루하루 사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 또한 뉴욕 지하철이다. 그런데 여기 숨겨진 또 하나의 매력은 바로 이 ‘지하철 미술’이다. 뉴욕의 대중교통을 관리하는 회사인 MTA에서 공식적 지원을 해 주요역을 중심으로 전체적으로 미술작품을 140개 정도 전시해 놓았다. 뉴요커들에게는 매일 출퇴근하는 길을 쾌적하게 만들어주고, 관광객들에게는 2달러짜리 패스를 끊고 이 역 저 역 다니며 ‘지하 미술세계’를 감상하는 구경거리를 준다.
이 전시품들은 타일 모자이크가 대부분이지만, 유리 벽화, 스테인드글라스 장식, 조각 등을 총망라한다. 작품은 그냥 아무렇게나 배치한 게 아니다. 각 지하철 역의 특색에 맞춰 제작한 점이 돋보인다. 이를테면 클래식 공연장이 모여있는 링컨센터 역에는 페르시안 카펫을 본뜬 문양으로 얌전하게 장식했고, 자연사박물관이 있는 역은 벽면과 천장 전체를 활용해 밤하늘 별자리를 옮겨다 놓은 듯 꾸몄다. 또 어떤 역에는 단순하게 승강장 벽에 그냥 그림을 걸어놓았지만, 선로가 많은 환승역에는 승객들이 바쁘게 지나다니는 복도에 역동적인 그림을 걸어 활기를 더해주고, 에스컬레이터와 계단이 복잡하게 모여 있는 공간은 전체적으로 같은 색조와 같은 분위기의 모자이크로 통일을 시켜서 승객들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준다.
작가는 유·무명작가들을 모두 아우른다. 무명작가도 많지만 대중적 인기가 있고 미술사에 남는 작가들도 적지 않다.

(사진)
브로드웨이 극장가의 중심이면서 대형 환승역인 42번가에는 팝아트(Pop Art)의 대표주자 중 한 명인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1923~1997)의 대형 작품이 걸려 있다. 행인들이 가장 많이 지나다니는 통로 윗부분에 걸린 가로 16m, 세로 1.8m의 벽화다. 만화에서 따온 듯한 이미지와 그림을 인쇄할 때 생기는 작은 점을 크게 확대한 독특한 표현 덕에 한눈에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임을 알아 볼 수 있다. 그의 스타일이 뉴욕 지하철의 활기찬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데다가 그 그림 밑에서는 날마다 거리의 악사들이 공연을 하기 때문에 그림을 둘러싼 공간이 한 폭의 문화공간으로 손색이 없다.
원래 뉴욕 지하철의 벽화미술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지하철뿐만 아니라 길거리 뒷골목 등 도시 곳곳의 벽에
페인트와 스프레이 등으로 그리는 그림인 ‘그래피티(graffiti)’가 당시 뉴욕을 중심으로 생겨났다. ‘그래피티’는 원래 이탈리아어 ‘그래피토(graffito)’에서 온 말로 ‘긁다, 긁어서 새기다’라는 뜻이다. 가난한 사람과 흑인 등 억눌린 소외집단들이 도심의 벽에 강한 원색과 속도감 있는 문양을 새김으로써 그들의 에너지를 쏟아냈던 셈이다.
그래피티는 처음엔 ‘낙서’ 취급을 당했다. 하지만 나중엔 케이트 해링(Keith Harring), 장-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같은 그래피티 전문작가들이 생겨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인정받았다. 우리나라도 10여년 전부터 미술전공 학생들과 아마추어 작가들이 ‘뒷골목 낙서’ 형태로 도시에 그래피티를 그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서울 시내 거리에서도 훌륭한 벽화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뉴욕 지하철의 미술세계는 작가들이 임의로 그려놓는 1960~1970년대의 그래피티 차원이 아니다. 뉴욕 대중교통을 관리하는 회사 MTA에 지하철 미술을 지원하고 관리하는 미술부서(Arts for Transit division)가 아예 1985년부터 따로 만들어져 있다. 물론 지금의 지하철 미술 역시 활기있고 만화 같은 이미지가 주를 이뤘던 초기 그래피티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하지만 초기에는 낙서 취급을 받아 시 당국에서 지우기에 바빴던 벽화가 불과 20년도 안돼 당당하게 지원을 받는 대중예술로 ‘신분상승’을 했기에, 미국의 학자들은 이 현상을 연구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이런 지하철 미술은 도시에서 어떤 기능을 할까? ‘지하철 타기(Taking the Train)’라는 책의 저자 조 오스틴(Joe Austin)은 책에서 “1970년대 후반에 지하철과 길거리에 그려졌던 그래피티 덕에 시민들은 공공의 영역에 대한 소유권을 나눠가질 수 있었다”고 썼다.
공식화되고 체계화된 지금의 지하철 미술도 비슷한 몫을 담당한다. 컬럼비아 대학의 댄 오플라허티(Dan O’Flaherty·도시경제학) 교수는 “뉴욕의 지하철 미술은 공공재(public goods)를 시민에게 구체적으로 돌려준다는 의미를 띤다”며 “지하철 내부를 쾌적하게 만들어 시민들이 지하철을 많이 이용하게 함으로써 교통 혼잡을 줄일 수 있고, 전체적인 도시환경이 좋아지기 때문에 멀게 보아서는 범죄를 줄이는 효과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뉴욕 이규현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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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마르트르 화가
‘붓’ 낭만도 식후경
“낭만이라고요? 그런 것 없어요. 경쟁심과 질투심만 이글거리는 곳이지요. 실력이 떨어진다 싶으면 손님들은 쳐다보지도 않아요. 살기 위해 기를 써야 해요. 그래도 손님과 가격 흥정을 끝낸 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순간이면 사라졌던 낭만이 생겨납니다. 돈과 함께 낭만도 되살아나는 셈이지요.”

(사진)
파리의 윤락가 피갈에 위치한 몽마르트르에서 그림 그리는 화가
겨울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지난 1월 19일, 해발 180m로 파리에서 가장 높다는 몽마르트르를 찾았다. 어둑어둑해지는 오후
5시, 베트남 화가 한 명과 동유럽계로 보이는 나이든 남자 한 명만 붓을 들고 있을 뿐 대여섯 명이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한 여자가 다가오더니 “안녕하세요”라며 한국말을 하는 게 아닌가. 베레모를 쓴 그 여성은 한국인 강옥희(51)씨, 몇 명의
한국인이 이 곳을 거쳐갔지만 현재 유일한 몽마르트르의 한국인 화가다.
강씨는 10년 전 미술 공부하러 파리에 왔다가 몽마르트르에 입성한 뒤, 그 곳을 떠난 적이 없다. 그림은 그리고 싶고 생계는
이어가야했던 것이 이유였다. “10년이나 여기 계셨다고요?” “아이구, 전 신참 축에 듭니다. 대부분 20년, 25년씩 된 사람들인 걸요.”
몽마르트르 화가의 이야기 보따리는 그렇게 풀리기 시작했다. 화구통, 미니 의자, 파라솔 등을 나눠들고 강씨를 따라 후미진 골목 귀퉁이로 갔다. 이곳 화가들의 화구통과 짐을 보관하는 창고다. 사물함 개수를 세어보니 세로 한 줄에 세 개씩, 총 45개다. ‘몽마르트르 나라’의 비밀이 한 겹씩 벗겨지는 착각마저 들었다.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 그곳은 천의 얼굴을 하고 있다. 대학 입학 후 처음 그곳을 찾았을 때, 몸을 휘감던 유화 오일
냄새의 강렬함을 지금껏 못 잊는다. 예술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했던 기자에게 파리는 몽마르트르 때문에 찾고 싶은 도시였다.
‘순교자의 언덕’이란 뜻을 가진 그 곳은 19세기 말에서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는 1914년까지 가난한 예술가들의 터전이었다.
반 고흐, 고갱 등이 등이 19세기 말 드나들었고 20세기 들어서면서부턴 피카소, 브라크, 마티스 등 당시 젊은 화가들이
‘세탁선’이란 허름한 집에 모여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가난한 화가들이 화장실 벽이나 나무 판자에 마음대로 낙서를 했다느니, 술값이나 화대로 그림을 주기도 했다는 이야기들은 왠지 묘한 감동을 안겨줬었다.
한데 나중에 보니 그곳은 섹스숍이 불야성을 이루는 파리의 윤락가 피갈에 있었다. 더군다나 이곳 파리 18구는 아랍계 이민자들과 동유럽 난민들이 유독 많은 우범 지대로 통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대형 섹스숍들이 즐비한 길을 지나면 조잡한 기념품 파는 가게들이 펼쳐졌고, 관광객들을 귀찮게 구는 장사꾼들이 바글거리는 그런 곳이다. 한데 희한했다. 언덕 아래 세상이야 어떻든, 언덕 위엔 여전히 낭만이 흘렀다. 성심(聖心)성당 앞 거리 악사의 구슬픈 아코디언 연주 덕분이기도 했지만, 뭐니뭐니 해도 그 곳 화가들 덕분이었다.
강씨와 근처 ‘피아노 바’라는 카페에 들어가 크레프를 주문했다. 이날처럼 비오는 겨울철, 이곳 화가들은 더욱 한기를 느낀다.
손님이 없으니 벌이도 시원치 않다. 화가들 수십 명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그림 경연장을 펼치는 여름철과는 딴판이다. 요즘
유로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북미 지역 관광객들이 줄어든 반면 중국 관광객들은 늘어났다고 한다.
“몽마르트르 화가 되기가 쉽냐고요? 얼마나 까다로운 자격 심사를 거쳐야하는지 몰라요. 여기서 그림 그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낸 서류만도 몇백 장이 된다고 하네요.”
체류증을 갖추고 세금 내역을 신고해야 하고 라 메종 닥티스트(La maison d’artiste)라는 미술협회에 가입하는 건 필수라 한다. 강씨는 미술협회에 세 달에 한 번씩 정기 회비를 내고 있다. 구비 서류를 갖춰 제출한 뒤 미술협회 직원과 시청 공무원에게 최종 심사를 받아야한다. ‘국가 자격증’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돈벌이를 목적으로 이젤과 화판을 들고 자리만 구하면 되는, 그런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파리 퐁피두 국립현대미술관 앞엔 지난해부터 파키스탄ㆍ중국 출신 거리의 화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자격을 따로 갖추지 않은 진짜 ‘거리의 화가’들이다.
몽마르트르 화가들 중 ‘주력 부대’는 현장에서 직접 초상화를 그려주는 사람들. 현재 90명 정도 된다. 그 외에 자신이 그린
그림을 팔거나 그 자리에서 풍경화를 그려서 파는 사람들은 150명이 넘는다고 한다. 전체 몽마르트르 화가들 중 여성은 15명선. 국적도 다양해 폴란드, 유고슬라비아, 베트남, 중국 출신이다.
초상화 한 점당 받는 ‘시장 가격’은 정해져 있다. 흑백 한 점에 40~50유로(6만~7만5000원), 컬러 한 점에 60~70유로(9만~10만5000원)선이다.

(사진)몽마르트르 화가 인생만 10년째 접어드는 강옥희씨
몽마르트르 화가들 세계, 그곳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화가들 사이의 질투심과 경쟁, 텃세가 심하다. 자연 도태되는 사람들이 나올 만큼 적자생존 법칙이 철저히 지켜지는 곳이다. “몇 년에 한두 명씩 들어오는데 ‘신입생’들은 잘 못 견뎌내요. 프랑스인들이 거의 없는 것도 다들 중도하차하기 때문이에요. 먹고 살기 어려운 외국인들이나 살아보려고 바둥거리지….”
누구 한 명이 특별히 질 좋은 종이를 썼다가는 그 세계에서 왕따 당해 살아남을 수 없다고 한다. 그림 실력이 좋은 화가 옆에
구경꾼이 많이 몰리면, 그 옆자리로 옮겨 손님을 빼앗는 화가들도 있다. 실제 그간 파리 친구들에게서 “한 사람이 허락도 안 받고 그림을 그리다가 매맞고 쫓겨났다더라” “종이랑 물감도 정해진 곳에 가서 사야한다더라” “거의 다 그려놓은 걸 사서 덧칠만하는 사람들도 있다더라”는 얘기들을 들어본 적이 있다.
한번 이곳에 입성해도 평생 직업이 보장되진 않는다. 살아남기 위해 책을 읽고 미술 공부를 끊임없이 해야 한다. 미술 학교를
졸업한 강씨가 최근 파리 8대학 미술과에서 다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이 세계에도 프로들의 세상은 따로 움직인다. 대여섯 명쯤 되는 스타급 화가들은 여름철이면 하루에 10장씩은 기본으로
그린다고 한다.(하루벌이만 100만원에 달한다는 말이다) 몇 개월 간 일하고 비수기엔 한가롭게 여행을 다니는가 하면 좋은 집에 고급 승용차를 갖춘 이들이다.
강씨는 돈 때문에 그리는 일이지만 보람과 기쁨을 느낀다고 한다. “손님을 붙잡아야 하고 흥정도 해야 하지요. 또 주변에서
‘모델과 닮았다’ ‘아니다’느니 참견을 하니 정말 피곤한 일이에요. 사실 남의 얼굴 그리는 건 특별히 자기가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삶은 고단해도 이곳 화가들은 작업터인 몽마르트르에 대해 애정을 품고 산다고 한다. “1960년대부터인가 상업적인 화가들이 몰려와 지금의 모습으로 변해왔대요. 하지만 원래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화가들이 배고픈 젊은 시절, 모여들어 그림을 그리던 곳이잖아요. 손님 한명 더 붙잡으려고 경쟁하다가도 모이면 그런 얘기들을 하곤 해요.”
겨울비를 맞으며 언덕을 내려오니 ‘빨간 풍차’ 모양을 한 물랭루주와 섹스숍들이 현란한 불빛을 발하고 있었다.
# by | 2006/08/23 21:01 | infomation | 트랙백(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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